빔프로젝터 덕분에 취미에도 없던 영화를 자주 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이번에는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려 합니다. 국내에서 개봉될 때의 제목은 이렇지만 원래 제목은 <터닝 레드> (Turning Red)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목을 번역하지 않고 그냥 개봉하는게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듭니다만, 아무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기본 정보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제작하고 도미 시 감독이 함께 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3월 11일 개봉했으니 내일이면 딱 1년이 되는 날이 되겠습니다.
기본 줄거리
영화는 캐나다 토론토를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메이 리라는 13세 소녀, 메이는 학교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집 안에서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입니다. 그러면서도 또래 아이들처럼 연예인을 좋아하고 때로는 멋진 이성과의 만남을 꿈꾸기도 하며 자신의 내, 외면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는 평범한 사춘기 청소년입니다. 다만 과도한 엄마의 보호로 인해 조금 숨막히는 일상을 살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른 점입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과도하게 흥분하고 화가 나는 순간이 잦아지며 갑작스레 레서 판다로 변신하는 본인의 모습을 마주합니다.
알고보니 이는 메이의 조상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의 축복이었지만 현대로 오면서 저주가 된 레서판다로의 변신. 메이의 어머니와 외가 어른들은 메이의 몸에서 레서판다를 내보내기 위한 의식을 하고자 하는데요. 메이는 이 과정에서 레서 판다인 자기 자신 또한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용기있는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내면의 고민과 그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나를 찾아가는 여정
조상들은 의식을 통해 레서 판다를 내보내 봉인해버립니다.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죠. 그리고 메이의 엄마도, 할머니도, 그렇게 레서판다를 봉인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통제는 물론 자녀에 대한 통제와 과잉보호를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스스로를 인정하기 보다는 내면과 행동을 통제하며 스스로를 옥죄는 삶을 살아갑니다. 언제나 완벽하고자 노력하고 그렇게 보이려 노력하지만 내면에서는 끝없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로 인해 갈증과 공허함을 느낍니다.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엄마의 청소년기 모습은 그 공허함과 좌절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주인공 메이는 레서 판다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듯한 모습을 수용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판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스스로 자유를 찾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메이는 엄마와 할머니가 걸어갔던 것과는 훨씬 성숙한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나를 인정하는 것이 완전한 나를 만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메이는 알았던 걸까요?
내면의 나,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세요
레서 판다로 변신하지 않을 뿐이지 우리 안에는 정말 많은 모습이 존재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선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나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상황에서는 분노를 참을 수 없고 수치심이 몰려올 때도 있습니다. 주류의 사람들과는 다른, 소수에 속하는 정체성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내 안의 다양한 나를 외면하고 완벽하게 통제된, 타인을 위한 나를 만들어 내는 것은 과연 행복한 삶일까 하는 질문을 해봅니다. 지금 이 모습을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될까?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진 않을까? 너는 왜 달라? 왜 이렇게 태어났어? 물어보며 괴롭히지는 않을까. 이런 내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을까 많은 고민이 됩니다. 저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생각을 그대로 드러낸다면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가면을 쓰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말과 행동을 한 날은 여지없이 위선적인 내 모습에 좌절하며 타인의 비난이 아닌 스스로의 비난을 방패없이 받아내며 아파합니다. 내 안의 레서 판다.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 안의 레서 판다. 타인에 대한 인정이 아닌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내가 내 레서판다를 사랑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면 타인에게도 훨씬 편안하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메이의 상황을 보자하니, 생각보다 그렇게 끔찍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친구들의 사랑과 인기를 한몸에 받는 아주 멋진 일이었지요. 나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싱거우면서도 오히려 이로인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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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취학 자녀와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청소년기의 고민과 혼란, 그 문화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데다가 영화에 내포된 이야기에 공감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기 아이들은 물론 내면을 찾아가는 모든 개인들에게는 감동이 있습니다. 바로 다가오는 감동보다는 잔잔히 삶 속에서 계속 생각이 나는 감동입니다. 내 안의 레서 판다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평가를 신경쓰며 통제하고 억압하는 나를 돌아보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만드는 고마운 영화입니다. 나를 조금 아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 그런 날에 이 영화가 당신에게 잔잔한 위로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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