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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책 리뷰: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을 높이는 교양 “교도소 대학”

유유출판사의 책을 좋아합니다. 불필요한 책날개를 과감하게 없애버려 종이를 아낀 것, 다양한 방면으로 독자들이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습니다. "~하는 법", "~의 말들"이라는 간결한 책 제목도 재미있는데다가 이 제목의 시리즈물로 브랜딩이 잘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비슷한 책 제목은 "유유!"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드는걸 보면 말입니다. 2022년 연말, "교도소 대학"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비영리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보니 다양한 분야의 복지분야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그중에서도 교정복지는 가장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 표지에 적혀있는 부제목에 홀린듯 구입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교양은 어떻게 사람을 높이는가"
 
복지라는 것은 인권을 말하면서도 사람을 높이기보다는 낮출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기초적인 생활 보장을 위해 여러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돕지만, 그것이 '인권적'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문제라고 봅니다. 받는 이의 상황과 감정,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 받는 것에 익숙하게 하여 자기 삶을 살도록 돕기 보다는 연명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모든 구조가 그렇습니다. 돕는다는 미명하에 낙인감을 줄 수 있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는 자가 "베푸는 것"에 과도하게 공치사하며 아름답게 포장합니다. "저소득층", "소외계층" 등의 말들을 경제적 이유로 갖다붙입니다만 경제적인 조건이 부족하다고 하여 "소외"라는 말과 동일시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한도끝도 없이 고민되는 지점이 많습니다. 이것이 내가 돕는 위치에 있는 것인지, 그들을 돕는다는 이름으로 나를 높이며 위선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기도 하죠.
복지, 비영리 현장을 생각하다 "교양이 사람을 높인다"는 표현을 보며 한번 더 반성을 하고 또 배울 점을 고민해보게 됩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교양은 어떻게 사람을 높일까요. 사람을 높이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교양, 학습, 사고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사람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유형의 복지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 답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 소개 및 주요주제

유유출판사에서 2022년 11월 4일 출간된 책입니다. 대니얼 카포위츠가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며 경험한 변화의 과정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수감자의 교육에 대한 의견은 상당히 분분하지만, 분명 이 일은 가치가 있는 일임을 소개합니다. 수감자가 사회로 돌아간 이후 재범을 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교정복지의 근본적인 목적일텐데요, 사실 저자는 "교정복지"라는 단어 자체를 경계합니다만, 그런 목적의 측면에서 본다면 여타 교정복지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높은 성과를 보인다는 것을 그의 데이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인문학 대학을 이수하여 학사학위를 취득한 학생들은 재범률이 현저히 낮을 뿐만 아니라 취업률이 높고 각자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재범률을 낮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문학 자체에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읽고 쓰고 사유하는 힘을 기르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고 말입니다. 
단순히 "재범률을 낮추는 것"과 "자기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에는 결과는 같을 수 있으나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 그 과정 또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지향을 명확하게 하는 것에서부터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3가지

1. 잠재력 : 누구나 창조하고 사유할 수 있는 뛰어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교육과 경험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가 자율성을 가지고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즉 시스템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2. 구조 : 미국 사회의 교도소는 우리나라의 교도소가 가지는 구조와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이는 뿌리깊은 인종차별에서 비롯되는데요, 흑인에 대한 차별적 역사가 만들어 낸 미국의 대량구금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 안에 갇힐 수 밖에 없는, 그리고 대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수감자를 위해 구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 구조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교도소 대학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3. 인문학 : 인문학이 각자의 상황에서 사유할 수 있도록 돕는 힘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같이 읽고 토론할 때 사람들은 한걸음 더 책 속으로,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구조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낮은 곳에서의 교육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느낀점 (소감)

공공정책의 모든 측면에 신자유주의가 침투하는 현상과 관련된 핵심적인 불평등 문제를 주변화하면서, 감금통치가 이민자, 백인 빈곤층, 성범죄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간과하여 상당한 정치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가초크의 지적은 꽤 적절하다.
- p. 128

128p의 이 문장은 어쩌면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봅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주변화하고 간과하고 시도되는 모든 노력은 미봉책에 부롸하지만 미국사회는 인종차별적 역사와 구조를 가려두고 '교정'이라는 목적으로 상당한 양의 예산을 쏟아부으며 그 구조를 유지해나갑니다. 하지만 인생을 통틀어 부정당하거나 차별받는 삶을 살아온 이들은 자신들이 교정되어야하는 존재라는 것 자체에 의문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도소의 설립목적과 소외 교정의 소기 목적이라 함은 안전한 사회가 아닌가요? 그러한 사회를 꿈꾼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 역사적인 고찰과 뿌리깊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정치적 비용을 줄이는 일이라고 봅니다.
또 하나, 위로부터 내려오는 일들은 확산력이 있지만 한계와 저항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아래에서 시작되는 의문과 그 의문에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의문이 제기되는 일, 그것을 어떤 이는 계속해서 걸어가며 질문을 던지고 있지요.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곤고한 구조의 작은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인문학은 누구나 그의 삶에서 한걸음 나와 구조를 조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우리 일에서도, 또 삶에서도 충실할 수 있는 힘은 읽고 사유하고 쓰는데서 나온다는 것을 내면화하는 시간. 좋은 책을 출간해주신 유유출판사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